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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왕의 적자… 치열한 권력다툼에 목숨 잃기도 했죠

작성자 : 이일의
    
     [뉴스 속의 한국사] 왕의 적자… 치열한 권력다툼에 목숨 잃기도 했죠
       신문은 선생님 
       입력 : 2018.05.16 
    
    [조선시대 대군(大君)]
    조선시대 적자 중 장남, 세자로 책봉… 대군은 벼슬 않고 조용히 살아야 해
    수양대군·안평대군 권력욕 커 다툼… 광해군은 이복동생 영창대군 죽여
    
    TV조선 역사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가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렸어요.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 다툼이 한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각색한 역사 드라마였지요.
    
    수양대군은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안평대군은 셋째 아들이에요. 
    세종은 왕비인 소헌왕후와 사이에 아들 8명과 딸 2명을 두었는데요. 그중 맏아들인 이향(훗날의 문종)을 
    왕위를 이을 '세자'로 책봉했어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자는 어떤 운명을 가진 자리였을까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대군(大君)'이란 조선시대 왕자들에게 내려진 작위(서열을 나타내는 호칭)예요.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는 '대군',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는 '군'이라는 호칭을 내렸어요. 
    그리고 왕비와 사이에서 낳은 맏아들을 '세자'로 책봉했지요.
    
                   [뉴스 속의 한국사] 왕의 적자… 치열한 권력다툼에 목숨 잃기도 했죠        
     
                       ▲ /그림=정서용 
    세자를 제외한 세종의 대군 7명 가운데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은 학문과 무예가 뛰어났고,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글씨와 예술에 뛰어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두 대군 모두 아버지 
    세종과 맏형 문종이 왕위에 있을 때는 왕의 명령을 받들어 국가의 여러 실무를 맡아 종친(宗親·왕의 친족)
    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지요. 그러나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3년도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열두 살
    에 불과한 어린 조카 단종이 왕이 되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어요.
    
    수양대군은 권람과 한명회를 참모로, 홍달손과 양정을 측근으로 무인(武人) 세력을 모았어요. 안평대군은 
    황보인과 김종서 등 조정 대신들과 가깝게 지내며 인사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어요. 이를 황표정사
    (관리를 추천할 때 특정 후보자 이름 위에 황색 표지를 붙이는 것)라 해요. 그러자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의 
    인사 전횡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장차 김종서가 왕권을 빼앗을 거라며 다른 왕족을 부추긴 뒤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 1453년 10월, 수양대군은 자기를 따르던 무인 세력과 '계유정난'
    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습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전하를 내쫓고 안평대군을 왕의 자리에 앉히려 하옵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습격해 김종서와 두 아들을 살해하고, 궁궐로 달려가 단종에게 이처럼 아뢰었어요. 
    그 뒤 황보인 등 안평대군 측 핵심 인물들을 제거해 나갔지요. 그리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사약
    을 내려 죽게 하고, 1455년 단종을 협박해 왕위에서 내려오게 하고 조선 제7대 임금 세조가 되었어요.
    
    다른 대군들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넷째 아들 임영대군은 손재주가 좋아서 총통과 화차 등 무기 제작에 
    뛰어났는데, 형 세조가 권력을 잡자 그를 보좌해서 신임을 얻었어요. 반면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역모죄로 처형당했지요.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은 모두 스무 
    살이 되기 전 병을 얻어 사망했어요. 늦둥이로 태어나 형 세조의 귀여움을 받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만이 계속 
    대군으로 있을 수 있었지요.
    
    ◇치열한 권력의 틈바구니에 서다
    이처럼 조선시대 대군은 왕의 적자(嫡者·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면서 맏아들(적장자)이 아니란 이유
    로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려난 존재였기 때문에 잠재적 왕권 경쟁 상대로 여겨져 많은 견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선 왕실은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않는다는 '종친불사(宗親不仕)' 원칙을 고수했는데요. 
    왕과 세자가 아닌 다른 왕족 사이에 권력 다툼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지요. 대군들은 결혼 전에는 
    궁궐에서 살다가 결혼하면 일정한 재산을 받고 궁궐 밖으로 나가 왕의 신하로 조용히 사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하지만 대군은 세자 다음으로 왕위를 계승할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권력에 깊게 관계된 경우가 
    적지 않았답니다. 세자가 갑자기 죽거나 큰 잘못을 저질러 쫓겨나면 그다음 왕위를 물려받은 것은 대군이었기 
    때문이지요. 실제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세자 29명 가운데 여러 이유로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7명에 불과
    했어요. 역대 조선 임금 27명 가운데 8명은 적장자가 아닌 대군이 왕위에 오른 것이지요.
    
    이렇게 치열한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부 대군은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어요. 대군의 비극적 운명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인물이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와 왕비 인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영창대군이에요. 선조는 후궁이 
    낳은 왕자(군)이면서 세자로 먼저 책봉된 광해군 대신, 유일한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책봉하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이 된 광해군은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말았답니다.
    
    [공주와 옹주]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공주',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옹주'라는 칭호를 내렸어요.
    '대군'과 '군'을 따로 부르는 것처럼 왕비(정실부인)가 낳은 자식과 후궁(첩)이 낳은 자식을 구별한 거예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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