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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淸 볼모로 갔던 효종, 송시열 등용해 '북벌정책' 준비

작성자 : 이일의
    
     [뉴스 속의 한국사] 淸 볼모로 갔던 효종, 송시열 등용해 '북벌정책' 준비   
    
       신문은 선생님
       입력 : 2018.04.18 
    
    [,효종실록]
    
    '형' 소현세자 대신 왕위 오른 효종 
    병자호란 후 '淸 정벌' 뜻 품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실행 포기했죠
    김육 통해 대동법 확대 실시했어요
    
    
    불타 사라진 줄 알았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효종실록'이 어렵게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고 해요. 
    '조선왕조실록'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등 4곳에 제각각 한 부씩 보관돼 왔는데, 
    이 중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대부분 불탄 것으로 알려졌던 오대산 '조선왕조실록' 중 한 권이 
    지난해 11월 일본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거예요. 이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사들이면서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지요.
    
    '효종실록'이라면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1619~1659) 때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에요. 
    그렇다면 효종 때 대표적인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소현세자 동생, 조선 제17대 왕이 되다
    
    1645년,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는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을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세자로 
    삼았어요. 인조가 이 같은 명을 내리자 봉림대군은 이를 사양하며 눈물로 임금에게 간절히 부탁했지요. 
    "아바마마, 부디 형님(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 마마를 왕세손으로 정하시옵소서."
    
    하지만 인조는 봉림대군의 간청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내 마음에 먼저 결정
    되었고 여러 사람의 의논도 모두 같으니 너는 사양하지 말고 이를 따르도록 하여라." 그로부터 4년 
    뒤인 1649년 인조가 54세 나이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세자였던 봉림대군이 왕의 자리에 올랐
    는데 그가 바로 효종이에요.
    
    봉림대군은 병자호란(1636~1637) 때 자신의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인물이었어요. 그곳에서 8년간 머물다가 1645년 조선으로 돌아왔지요. 하지만 앞서 귀국한 소현세자가 
    아버지인 인조의 미움을 받다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청나라 인질 시절 
    접한 서양 과학 문물에 감복한 소현세자가 이를 인조에게 알리자, 인조가 소현세자를 경계하기 시작
    했다는 게 후세 전문가 의견이에요. 소현세자가 죽자 인조는 소현세자의 맏아들인 원손이 있음에도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았지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효종은 조선을 짓밟고 임금을 욕보인 청나라에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어요. 
    훗날 군사력을 키워 청나라를 공격하려는 뜻을 품었고, 왕이 되자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계획을 
    세웠어요. 이를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려는 정책이라 해서 '북벌(北伐) 정책'이라 불러요.
    
    ◇북벌 정책과 송시열 
    
    효종은 청나라와 가깝게 지내던 인물들을 조정에서 물러나게 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사상을 지녔던 
    김상헌, 김집, 송시열 등을 적극 등용했어요. 이 가운데 효종과 북벌 정책을 논의하고 준비했던 대표적 
    인물이 송시열(1607~1689)이었답니다. 효종이 왕자였을 때 그를 교육했기 때문에 임금과 무척 가까운 
    사이였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 그림=정서용 
    
    효종은 남한산성과 수어청(조선시대 중앙군 5군영의 하나)을 새롭게 정비하고, 중앙군 수를 늘렸어요. 
    조총과 화포 등 근대식 무기 개량에도 힘썼지요. 이처럼 열심히 북벌을 준비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요. 북벌을 반대하는 신하들이 많았고, 청나라가 너무 강력한 나라로 성장해 현실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대동법 확대한 김육
    
    송시열과 더불어 효종이 가장 존경하고 믿었던 인물로는 김육(1580~1658)을 꼽을 수 있어요. 효종이 
    왕위에 오를 때 김육의 나이 이미 69세였지만, 효종은 김육을 '대사헌(조선시대 감찰기관 사헌부 장관)'
    으로 조정에 불러들였어요. 김육의 정치·행정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훌륭한 인품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지요.
    
    사실 김육은 인조가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던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효종이 내린 
    벼슬을 여러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관직에 나아갔지요. 김육은 이후 '대동법(大同法·조선시대 
    때 나라에 내는 특산물을 쌀로 통일해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을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확대 시행해서 백성
    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답니다.
    
    그래서 1658년 김육이 세상을 떠나자 효종은 "국사(國事·나랏일)를 맡아서 김육처럼 흔들리지 않는 굳센 
    사람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해요.
    
    ☞효종과 하멜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 일행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닿았어요. 
    조선 관군(官軍)에게 붙잡힌 하멜은 효종 앞에 끌려갔지요. 당시 북벌 정책을 추진하던 효종은 하멜이 화포를 
    다룬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를 훈련도감(한양의 수비를 맡아보던 군)에 소속시켜 무기 개발을 돕게 했어요.
    하멜은 1666년 조선을 탈출해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갔고 조선에 머물렀던 14년간 일을 기행문으로 써서 
    세상에 알렸답니다. 이 기록을 엮은 책이 바로 ‘하멜 표류기’로, 한국의 지리·풍속 등을 유럽에 소개한 첫 
    문헌이에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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